이스라엘선 `잔혹 살인마', 레바논에선 `영웅'

by soulkorea posted Jul 16,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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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연합뉴스) 고웅석 특파원= 16일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무장정파 헤즈볼라 간 `포로교환'에서 가장 주목을 끈 인물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조직원인 사미르 쿤타르(45.Samir Kuntar)다.

   이스라엘 정부가 포로교환 대상자 명단에 쿤타르를 포함시켰다는 소식이 처음 전해진 이후 이스라엘 내에서는 그의 석방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쿤타르가 30년 전 다른 무장대원 3명과 함께 이스라엘에 침투해 경찰관 1명과 인질 2명을 무자비하게 살해한 사실을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그의 총탄에 희생된 유족들은 법원에 포로교환을 막아달라며 청원을 제기하기도 했고 시몬 페레스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으나 이스라엘 정부는 쿤타르를 포함한 5명의 석방을 결정했다. 헤즈볼라에 피랍된 이스라엘의 두 병사를 고국으로 데려와야 한다는 의무감이 우선했던 것이다.

   페레스 대통령은 포로교환 하루 전인 15일 쿤타르에게 희생된 유족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그들을 풀어주는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리면서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꼈다"며 자신의 심정을 전했다.

   그는 "우리도 살인자를 풀어주길 원치 않았지만, 우리에겐 조국을 지키라고 보낸 두 병사를 고향으로 데려와야 하는 도덕적 의무가 있다"며 유족들을 달랬다.

   팔레스타인 해방전선(PLF) 소속이었던 쿤타르는 1979년 4월 지도자 아부 압바스의 지시에 따라 다른 무장대원 3명과 함께 고무보트를 타고 이스라엘 해안에 침투했다.

   이들은 그곳에서 경찰관 1명을 사살하고 북부 나하리야의 한 아파트에 침입해 평범한 시민 대니 하란과 4살난 딸을 인질로 잡아 해변으로 끌고나와 무자비하게 살해했다고 일간 하레츠 등 이스라엘 신문들은 전하고 있다.

   쿤타르는 해변에서 이스라엘 군.경과 교전을 벌인 끝에 생포됐고, 다른 대원 2명은 현장에서 사살됐으며, 나머지 대원 1명은 이스라엘 교도소에 투옥됐다가 1985년 포로교환으로 석방됐다.

   당시 16살이었던 쿤타르는 5번의 중첩 종신형을 선고받고 29년을 복역한 끝에 고향 땅을 밟을 수 있게 됐다.

   그는 이스라엘에 침투하기 1년 전에는 PLF의 지시에 따라 `나세르'라는 작전명 아래 이스라엘에 침투해 들어가려다 요르단에서 체포돼 그곳에서 11개월간 복역하기도 했다.

   이스라엘 교도소에서 수없이 많은 단식투쟁을 벌이기도 했던 쿤타르는 학업에 뜻을 두고 공부에 몰두해 텔아비브 대학으로부터사회학 학위를 받았으며, 수형자들을 뒷바라지하던 아랍계 이스라엘 여성과 옥중 결혼식을 올렸다고 dpa통신이 전했다.

   그는 가족들에게 쓴 편지에서 "나는 1979년에 내 조국을 방어하는 영예를 누렸다"며 "나의 유일한 회한은 이스라엘이 1982년에 처음 침공했을 때 내 조국을 위해 싸울 수 없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에서는 잔혹한 살인마이지만 이런 그의 생환은 레바논과 헤즈볼라에게는 `영웅의 귀환'인 셈이다.

   헤즈볼라가 참여하고 있는 레바논 정부는 그의 귀환을 기념해 16일을 공휴일로 선포했다. 쿤타르의 고향인 아베이의 거리는 쿠타르를 `레바논의 양심'으로 치켜세우는 깃발과 환영 현수막으로 장식돼 있다고 예루살렘포스트는 전했다.

   freem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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