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이데올로기와 국제운동--서동찬 (한반도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by soulkorea posted Dec 08,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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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이슬람주의 글로벌 네트워크


1. 정치적 이슬람의 파라독스

정치적 이슬람은 정치적 행동을 통한 이슬람국가의 건설을 추구한다. 당, 국가 등 서구의 사회과학적 용어를 그대로 동일하게 사용하고 이슬람혁명의 이상에 레닌의 전술을 결합시킨다. 정치적 이슬람이 반드시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속주의 정치의 제도권 안에서의 정당 활동을 통해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특정 국가, 민족, 부족에 국한되지 않는 움마(Umma) 공동체적 통합을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결국 정치적 이슬람은 어떤 주어진 국가 안에서의 하나의 이슬람국가를 우선 수립하는 것이 공통의 목표이다. 이것은 마치 소련 사회주의 건설과정에서 나타난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론과 유산한 전략이다.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완수를 위해서는 우선 일국에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고 이를 교두보로 세계 혁명을 도모하자는 것이 바로 일국사회주의론인데, 정치적 이슬람 또한 이와 같은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슬람주의의 개념 자체가 이슬람국제운동의 실패 원인이 되고 있다. 초국가적인 이상에도 불구하고 현존하는 정치적 이슬람 운동은 민족국가의 한계 못 벗어나고 있다. 코민테른 같은 이슬람주의 인터내셔널 없는 것이다. 호메이니 사후 이란도 이슬람주의보다는 국가이익에 우선하는 외교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란이 시아파 아제르바이잔보다 러시아와 아르메니아와 더 가까운 것과, 반탈리반 입장과 반무슬림형제단 정책을 추구하는 것이 그 실례가 된다. 그리고 이슬람국가이익이 곧 이슬람 위하는 것이라는 논리에서 샤리아 변용까지 가능하다고 보는 등, 이슬람혁명이 반대로 이슬람의 세속화를 야기하고 있다.

이란 뿐 아니라,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수단의 투라비 정권, 예멘의 이슬라흐당, 레바논의 헤즈볼라, 터키의 부활당, 탈리반 등등, 실재 정치적 이슬람운동은 민족주의화 성향을 띄고 있다. 여기에 예외로 초민족, 국제주의 성격을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사우디, 파키스탄, 무슬림형제단의 경우인데, 파키스탄은 특정한 영토가 아니라 남아시아 모든 무슬림의 국가(인도와 종교적인 차원에서만 차이)로서 초민족적 무슬림 정체성으로 민족정체성의 결핍을 우회하는 성격이 강하고, 사우디와 무슬림형제단은 이슬람원리에 근거하여 수립된 정치단위이다. 반면에, 코소보의 무슬림 슬라브(Gorani)와 루마니아인들은 친 세르비아성향이며, 캐톨릭 알바니아인들은 무슬림 종족과 연결되어 있다.1999년, 체첸의 바사에브의 다게스탄 공격했을 때 체첸과 다게스탄의 무슬림이 하나가 되어 반러 분리주의 운동을 일으킬 것을 예상했으나 다게스탄의 무슬림들은 동조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프간 북부 동맹과 타지키스탄은 이슬람 아젠다를 거의 버리고 민족유대가 우선한다. 따라서, 국제 지하디스트들은 국제적인 무슬림 연대가 일어나지 않는 것에 애로를 겪는다.

제도권 안에서의 정치적 이슬람의 실패는 더욱 분명하다. 이슬람국가에서의 선거에서 이슬람당은 20%대 득표를 얻을 뿐이다. 다시 말해 ‘무슬림투표’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슬람주의자들의 제도권 정치는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했다. 또한 이슬람당도 정치공간에서 무슬림 대표 유일정통 정당이라는 고집을 포기하고, 다원성을 인정하는 경향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70-80년대의 정치적 이슬람의 성장은 많은 무슬림국가들을 보수적 이슬람으로 몰아갔다. 야권의 거센 이슬람 원리주의적 요구를 권위주의 정권이 수용하고, 보수적인 방향으로 공인된 이슬람을 조직화 시킨다. 그 예로 파키스탄은 샤리아법안을 93년에 통과시켰고, 알제리는 84년에 가족법을, 터키는 83년에 종교교육을 의무화했다. 또 이집트 알 아즈하르 대학과 연계 교육기관이 1986-7년에 1,855개에서 95-96년에 4,314개로 증가했고, 파키스탄에 등록된 마드라스는 47년에 137개에서 95년에 3,906개로 증가했다. 이러한 이슬람학교 네트워크는 사우디의 오일자금으로 운영이 되고 있다.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는 박사학위의 절대적 다수가 종교학 분야에서 취득되는데, 이는 종교학졸업자들이 사회 진출에 유리하고, 직업 전망을 높이기 위해 교육영역과 법을 이슬람요소로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슬람화를 통해서 직업 기회가 늘어난다(교육, 자캍 징수, 종교경찰 등).이러한 보수화의 맥락에서 이슬람법 강화, 이슬람 은행설립, 히잡으로의 복귀, 기독교선교사 추방 등을 설명할 수 있다.

2. 포스트이슬람주의

글로벌화와 포스트모던의 영향력은 이슬람원리주의에도 많은 변화를 가하고 있다. 영토와 민족을 결합하는 민족국가의 경계가 무너지고, 무슬림 인구의 세계적 팽창, 인터넷 등 통신혁명으로 인한 양방향 소통, 권위주의의 해체, 집단주의에서 개체주의와 개성의 강조로의 변화, 폐쇄적인 규범과 이성주의(logocentrism)를 해체하는 다양성과 자유, 실제 체험의 강조와 세대별 세포 공동체의 활성화 등지구촌 전체를 덮고 있는 이러한 글로벌화의 특성이 이슬람원리주의가 실현하고자 하는 이상을 성취해 가는데 다양한 길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지구촌의 재이슬람화는 또 다른 양상으로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필자는 포스트이스람주의 혹은 네오원리주의라고 부르고자 한다. 네오원리주의는 한마디로 재이슬람화의 민영화(privatization)이다.

즉, 국가가 경영하던 국영기업체 또는 공법인(公法人)의 경영을 생산성 향상을 위해 민간 경영자에게 넘기고, 정부의 경제계획이나 국가경제에 대한 통제보다 시장 메커니즘을 중시해야 한다는 것을 민영화라고 정의한다면, 재이슬람화의 민영화는 정치적 이슬람과는 달리 사회적인 이슬람규범이나 강제규율보다 개인영혼의 이슬람화를 추구하는 경향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신원리주의는 국가로부터의 전방위적 이슬람 이데올로기화가 아니라. 국가에 의하지 않은 사회 영역에서의 개인적인 샤리아 적용을 강조한다. 종교보다는 개인의 종교성(religiosity)이 중시된다. 이슬람이 일정 국가의 특정 문화와 전통이었다면, 글로벌 시대의 이슬람은 페르시아, 아랍, 서구, 중국 문화와 같은 문화 색체를 모두 벗어내고, 이슬람의 보편적 가치를 창출한다. 이러한 이슬람보편 가치는 물질주의와 자유주의로 물든 서구 사회의 비무슬림들에도 먹힐 수 있는 자기 변화와 자기 실현을 강조한다. 이러한 경향성은 글로벌 시대에 무슬림들 만 아니라 기독교에서도 유사하게 발생하는 현상으로 신원리주의적 패턴을 한번 정리해보면, 개체화(individualization), 주어진 문화의 틀을 벗어난 이슬람(deculturalisation), 영토 개념을 초월한 상상화된 무슬림 Umma 등을 들 수 있다.

네오원리주의와 이슬람주의의 본질적인 차이는 국가와 정치에 대한 견해에서도 나타난다. 네오원리주의는 이슬람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정치적 투쟁을 거절한다. 이슬람국가는 움마의 재 이슬람화로부터 나오는 결과이지 재 이슬람화를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네오원리주의에서 이슬람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정치적 행동주의가 자아의 개혁 자체의 필요를 간과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대부분의 무슬림은 선전을 통해서 이슬람의 신조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정치 자체를 부적절 한 것으로 여긴다. 영혼의 변화가 국가의 변혁보다 우선해야한다고 본다. 지하드보다는 다와(dawah)를 선행해야 한다고 본다. 포스트이슬람주의자들은 그래서 특별한 이슬람적 기관을 설립하는 것에 필요를 갖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제도를 통해서 샤리아가 충분히 실천되지 않기 때문이다. 탈리반이 아프가니스탄을 다스렸을 때, 국가 기관을 세우는데 그들은 무관심했다. 탈리반은 국가 강화보다는 국가 해체를 위해 노력했다(공무원 절반 해고. 오마르는 각료회의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음. 비무슬림 대사 접견거부, 자유 시장에 국가 개입하지 않고 방임, 자캍 징수 제외하고 밀수를 반대하지 않음으로 국가세수 잃으면서 사회경제 이슈들에 무관심). 탈리반들에게는 이슬람국가라는 개념 자체가 샤리아에 어떤 것이 첨가되는 것으로 이해해서 거부했다.

그렇다면,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네오원리주의가 확산되는 원인은 무엇일까?


첫째, 신원리주의는 세계화의 산물이자 세계화의 담지자라는 측면인데, 이것은 바로 신원리주의가 탈문화화의 과정을 공개적으로 추구하기 때문이다. 신원리주의는 이슬람을 문화의 형태로 보지 않고, 주어진 문화 안에 심겨지면 그 순수성과 총체적 차원을 상실하는 단지 종교로만 간주한다. 따라서 신원리주의는 이슬람세계의 지방 이슬람(모르코식, 이집트식 등)을 거절하고 민족전통과 풍습과도 대립한다. 나아가 특정한 이슬람문화를 선호하고 서구문화를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무슬림문화 자체를 벗어 던진다. 글로벌화를 통해서 이슬람 전통의 모국을 떠나 세계각지로 교육이나 노동을 위해 이주해 가면서 다양한 문화들을 접하고 경험하면서 이슬람은 더 이상 특정한 문화로서의 종교가 아니라, 현대를 이슬람적인 코드로 살아가는 가치와 개별화된 생활양식이 되었으며, 이제는 아랍, 아프리카, 동남아, 페르시아, 러시아, 서구 등 영토를 초월하는 초문화적인 이슬람 공동체를 형성해 가고 있다.


둘째, 따라서 신원리주의는 개인적 차원에서의 이슬람화(개인화의 경험)를 강조한다. 장로와 권위를 상징하는 문화적 이슬람을 버리고 학자가 되기보다 학생이 되기를 더 긍정적으로 본다. 그렇다고 공동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그러한 무슬림 움마는 개인에서부터 시작하여 재건되어져야 한다고 본다. 새로운 공동체는 부여된 문화적 규범이 아니라, 개인적이고 인격적이고 자발적인 의탁에 기초하여 운영된다. 신원리주의자들은 혁명이 아니라 구원을 목표로 삼는다. 정치적 행동을 취하기 전에 개인적인 무슬림으로서 바른 길을 걷도록 요구한다. 다시 말해서 마음 안에 이슬람을 세우는 것이 곧, 땅에서 자신을 위해 이슬람이 건설되게 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이슬람주의자들에게는 방법이 이슬람국가라면, 네오원리주의자들에게는 다와이거나 정치적이지 않은 큰 지하드(손, 가슴, 혀의 지하드)이다. 투쟁은 이제 영적인 여행이며, 자아의 변혁을 궁극적 목표로 둔다. 그리고 무엇이 바르고 틀린 것인지 타인들에게 말하는 것은 새로운 의무는 아니지만, 이것은 영원한 개인적인 의무가 된다.


셋째, 신원리주의는 이슬람국가 출신이라는 고정관념을 넘어 자기 정체성과 신념에 회의를 가진 모든 개인을 전도 대상으로 삼는다. 서구에서는 이것이 뿌리가 없는 청년들, 종종 잘 교육받은 청년들로서 좌절하고 이미 파산상태에 빠진 사람들에게 적용된다. 그런 개인들을 위해서 이슬람원리주의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 대학 캠퍼스까지 어디를 가도 그 상황에 적합한 행동을 규정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제공한다. 그리고 마약중독자들이나 감옥의 죄수와 같이 훈련(discipline)을 발견하고 새로운 공동체에 소속되고 싶은 청소년들을 전도한다.


넷째, 신원리주의는 탈영토화(deterritorialisation)이다. 즉, 특정한 영토에 심겨진 인종, 종족, 언어, 문화를 초월하는 상상의 움마를 추구한다. 지리는 부적절하다고 본다. 진정한 이슬람 교리에 의해 다스려지는 사회나 국가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이제 무슬림은 특정한 국가와 영토의 경계를 넘은 가상공간의 공동체가 되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을 통해서 어쩌면 무슬림들이 더욱 더 국토의 경계를 초월하게 되면서 이러한 가상의 움마를 확대시키고 있지 않은지 모른다. 이제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은 자기를 더 이상, ‘프랑스인이다’,’아랍인이라’라고 하지 않고 단지 ‘무슬림이다’라고 한다. 그들은 국가를 장악하지 않아도 국부적으로 샤리아 공동체를 세우려고 한다.


결론

이상에서 우리는 오늘날 이슬람 국제 운동의 성격과 성장과정을 분석해 보았다. 글로벌화의 시각에서 이 현상을 연구할 필요가 있음을 더욱 분명해졌다고 볼 수 있다. 문화주의적 접근법은 이슬람을 하나의 서구문화와 다른 문화적 특성으로 보았고, 그런 가정 위에서 이슬람의 사회와 역사와 정치 문화를 분석해 갔다. 그러나 글로벌 시대에 이슬람은 더 이상 특정한 영토나 국토에 한정된 실체가 아니라, 전지구적인 네트워크로써 글로벌 가상 공동체를 추구하고, 사회의 각 영역과 개인의 자아의 배려 차원에서 문화가 아닌 코드로써 이슬람 가치가 부활하고 있으며, 그것이 특별히 삶의 가치체계와 정체성의 혼돈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먹혀들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제 이슬람은 특정한 영토의 현상이 아니다. 글로벌의 충격을 받고 전통질서가 흔들리고 새로운 가치가 형성되지 않는 이 시대에 강력한 이데올로기의 코드로 나타나서 인간의 영혼과 삶을 코드화하는 기제로서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이슬람주의와 포스트 이슬람주의의 차이를 하나의 단계론으로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정치적 이슬람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이슬람국제운동이 시작되었다는 것 보다는 이러한 경향성들이 실재 이슬람 운동가들 안에 혼재되어 있고, 양립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우리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이슬람국제운동을 살펴보면서 이것이 동시대의 기독교운동과 유사하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고, 어떤 면에서는 더 전략적이고 실제적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인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의 근본을 살필 수 있는 거울인지 모른다. 초겨울 잎을 다 떨 군 감나무처럼 추워지는 이 계절에 개인의 신앙과 인생의 무성한 겉모양을 벗고 뼈 속 깊이 <근본>을 맞아들이고 성찰해야 할 것 같다.


참고 문헌

Kepel, Gilles. Jihad: The Trail of Political Islam, translated by Anthony F.Roberts. Cambridge, Mass.: Harvard University Press, 2002.

Kepel, Gilles. The War for Muslim Minds: Islam and the West, translated by Pascale Ghazaleh. Harvard: Harvard University press, 2004.

Roy, Olivier. Globalised Islam: The Search for a New Ummah, London: Hurst, 2004.

손주영, 이슬람-교리.사상.역사, 서울:일조각,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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