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 인도의 종교간 충돌 배후에 존재하는 경제 문제

by soulkorea posted Oct 2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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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동이 발생한 오리싸(Orissa) 주(오른쪽 노란 상자)]

인도 동부에 위치한 오리싸(Orissa) 주(州)의 칸다말(Kandhamal) 지역 내(內) 티안지아(Tiangia)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지난 2008년 8월 말 이 마을에 거주하는 기독교인들을 공격하려고 왔던 사람들은 아주 조직적이었다. 그들은 마을까지 쭉 이어지는 길을 따라 서 있는 나무와 돌을 이용해 경찰의 개입을 막기 위한 장애물을 설치했다. 그 후 힌두교인들은 반(反) 기독교 구호를 외치며, 예수의 그림이 있는 집에 침입해 들어가 값비싼 물건들을 훔치고 집을 불태웠다. 또한 그들은 미처 숲 속으로 피하지 못한 기독교인들을 폭행하거나 도끼로 손과 발을 절단해 죽게 만들었다.
이 지역 경찰관은, 지난 2008년 8월 25일 폭동으로 티안지아에서 세 명이 사망했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견고하게 만들어진 장애물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하루가 지나서야 경찰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티안지아(Tiangia)에서 일어났던 폭동은 칸다말 지역의 대부분의 마을과 오리싸 주의 다른 지역에서도 발생했다. 최소한 16명이 사망한 이번 폭동은 힌두교인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인도에서 지난 수십 년 간 발생한 반(反) 기독교 폭동 중 가장 최악의 사건이었다. 또한 이번 사건은 인도 내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경제적인 차이가 커지면서 각 계층 간의 불화가 부분적인 원인이 된 폭동이다.
오리싸 주는 오랫동안 정부로부터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해 가난에 허덕여 왔다. 반면 기독교 선교사들은 교육을 포함해 정부가 제공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이러한 상황이 전에도 충돌을 야기하기는 했으나,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 경제적인 부를 누릴 기회가 늘어남에 따라 충돌의 위험은 더 높아져 왔다.
오리싸 주 정부에 따르면, 칸다말 지역에서 발생한 이번 폭동으로 인해 기독교인 가옥 약 1,400채가 파손되었고, 최소 80여 개의 교회와 예배 처소가 불탔다. 이 지역 기독교 공동체는 고아원들도 파괴되었다고 전했다. 인도 기독교 단체는 이번 사태로 25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오리싸 주 당국자는 16명이라고 밝혔다.
현재 라이키아(Raikia)에 있는 난민 캠프에는 약 13,500명의 사람들이 수용되어 있다고 칸다말 지역 고위 관리는 전했다.
인도 언론에 따르면, 오리싸 주에서 일어난 폭력 사태는 9월까지 이어져 많은 기도 처소들이 불태워 졌다. 인도 중앙 정부는 지난 2008년 9월 2일 더 많은 군인들을 폭력이 난무하고 있는 지역으로 파견해 치안을 유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을 향한 공격을 막을 조치를 경찰이 충분히 취하지 않고 있다고 많은 기독교인들이 불평하자, 인도 대법원은 지난 2008년 9월 3일 오리싸 주에서 폭동이 어떻게 진압되고 있는지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오리싸 주 정부에게 명령했다.
이번 사태는 지난 2008년 8월 23일 오리싸 주에 살고 있던 락스마나난다 사라스와티(Laxmanananda Saraswati)가 살해되면서 촉발됐다. 사라스와티는 힌두교인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에 반대하는 힌두교 급진 단체와 연관된 인물이다. 당시 살해 사건 현장에서 공산주의 반군들이 사라스와티 살해가 자신들의 소행임을 밝힌 편지가 발견되었음에도 많은 힌두교인들은 살해 사건의 책임을 기독교인들에게 전가했다.
가장 최근에 실시된 인구조사에 따르면 2001년 인도 전체 인구에서 기독교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2.3%이다. 인도의 많은 비(非) 기독교인들은 인도에서 기독교로의 개종이 늘어나고 있는 것에 대해 오래 동안 못마땅해 왔고, 인도의 경제가 상승세를 타면서 이러한 감정은 더욱 고조되었다.
인도 내에서 기독교 선교사들은 불가촉천민(Dalits)을 포함하여 낮은 계층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역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인도가 독립한 1947년 제정된 법에도 불구하고 불가촉천민은 인도 사회에서 종종 차별 대우를 받거나 아주 형편없는 대우를 받아왔다. 천민들은 수도와 같은 기본적인 편의시설 이용 조차 차별 받고, 매우 위험한 업종에 종사해야 했으며, 낮은 사회적 지위 때문에 폭행을 당하거나 강간과 살해를 당하기도 했다.
이러한 인도의 불가촉천민들이 이슬람이나 기독교로 개종을 한다고 해도 신분의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독교와 다른 비(非) 힌두교 종교는 불가촉천민을 비롯하여 교육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여, 불가촉천민들에게 선천적으로 주어진 열악한 사회적, 신분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해 주었다. 특히, 기독교 교육은 종종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는데, 이러한 기회는 인도 내에서 호텔과 같은 서비스 업종과 인도의 경제성장을 이끌어 온 지식 정보 산업의 직장을 가지는 것을 수월하게 했다.?
전(全) 인도 기독교 협의회(All India Christian Council)의 회장이자 불가촉천민의 인권 운동가인 조셉 드사우자(Joseph D'souza)는, 오늘날 인도 전역에서는 인권을 보호받지 못하고 억압당하고 있는 사람들과 부족들 그리고 낮은 카스트 계급 사람들이 현재 힌두교에 뿌리를 두고 있는 카스트 제도를 탈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기독교뿐 아니라 불교, 이슬람 그리고 공산주의 무신론으로 개종한다.
이러한 변혁을 주동하고 있는 사람들은 60년 간 인권이 짓밟혀 온 사람들이며, 그들의 반란은 특정 종교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드사우자 회장은 덧붙였다.
하지만 개종은 칸다말 지역과 같이 경제적으로 낙후되어 있는 인도의 시골 지역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다. 칸다말 지역 주민 65만 명은 주로 쌀, 심황(turmeric), 생강 그리고 나무로 만든 공예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라이키아(Raikia)에서 10년 간 살아온 56세의 토마스 바게스(Thomas Varghese) 목사는, 이번 폭동에서 폭도들이 그를 알아보고 죽이려 하자 약 3킬로 미터를 뛰어 숲으로 도망가 그 곳에서 밤을 보냈다.? 바게스 목사는 교회가 사람들을 교육시키고 계몽시키면서 기독교인들과 힌두교인들 사이의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티안지아 마을의 젊은 힌두교 농부 프라모드 파라단(Pramod Pradhan)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기독교 선교사들이 많은 돈을 투자해 힌두교인들을 기독교로 개종하도록 유혹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파라단의 생각은 인도의 많은 힌두교인들이 갖고 있는 기독교에 대한 반향을 보여준다.
높은 계급의 힌두교인이자 무역업자인 파드마 차란 판다(Padma Charan Panda)는 이번 폭동을 보며, 기독교인 무역업자들이 가난하고 무지한 사람들을 이용하고 있다는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반면, 티안지아 주민 아사 라타 나약(Asha Lata Nayak)은 이번 폭동으로 집과 30세의 남편 비크람(Bikram) 그리고 남편의 오토바이까지 잃었다. 나약에 의하면, 그녀의 집을 파괴한 사람들은 그녀의 이웃이었다. 현재 난민 캠프에서 지내고 있는 나약은 기독교에 대한 그녀의 믿음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또한 그녀는, 그녀의 남편은 하나님을 위해서 죽은 것이며, 자신 또한 기독교인으로 태어났고 또 기독교인으로 죽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출처: The New York Times, 2008년 9월 4일, 한국선교연구원(krim.org) 파발마 6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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